[2020 새해맞이 연속 특강] 언론사 준비 계속해도 될까요_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 2020.02.17
- |
- null
- |
- 인터뷰
언론 넘보는 유튜브, 유튜브 닮는 언론
“지금 상황하고 너무 비슷해 보였습니다.”
성한용 <한겨레> 정치팀 선임기자가 지난 칼럼에 인용한 노랫말을 화면에 띄웠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수록곡 ‘피렌체’였다.
“우리는 분열의 시대 문턱에 서 있네. 구텐베르크는 세상을 변화시켰고 뉘른베르크 인쇄소에선 쉴새 없이 인쇄물이 쏟아지네. 새로운 생각들이 모든 것을 바꾸리라. (중략) 교과서는 대성전을 파괴하고 성경은 종교를, 인간은 신을 파괴할 것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파괴할 것이다.“
15세기 프랑스를 묘사한 가사에서 오늘날 언론이 겹쳐 보였다. 유튜브가 인기를 끌면서 레거시 미디어의 권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사이 언론인을 신뢰하는 시민은 줄어간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불안감을 느낄 예비언론인들을 위해 한겨레 언론아카데미 한터가 연속 특강을 준비했다. 첫 번째 특강이 지난 7일 신촌 한겨레교육문화센터 703호 강의실에서 열렸다. ‘탈진실 시대와 언론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성 기자는 “저도 답을 모르겠어요”라고 자주 말했다. 확답을 내리기보다, 언론이 맞닥뜨린 위기와 언론인이 받아든 과제들을 차분히 짚어나갔다. 강의실을 채운 예비언론인들 얼굴에 착잡함이 묻어나왔다.
정치부 기자는 냉정한 관찰자 돼야
성 기자는 1985년 <서울신문>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35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부 기자로 현장에서 뛰고 있다. 그는 정치부 기자라는 존재를 몇 가지 키워드로 설명했다. 물어뜯는 본능이 살아있는 감시견, 취재원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 가까이 할 수도 멀리 할 수도 없음)의 자세, 특종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등이었다.
그는 정치부 기자를 ‘해설자’에 비유했다. 이슈 가운데 중요한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줘야 시민이 복잡한 정치 현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남들이 잘 못 보는 지점을 가끔 볼 때가 있어요. 누구나 다 알지만 그걸 꿰서 보여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교수님들은 연구하느라 바쁘시고, 소설가들은 얘기해도 잘 안 믿죠.”
정치부 기자는 ‘냉정한 관찰자’가 돼야 한다면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 때 일화를 떠올렸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한 기자는 탄핵안 가결 소식을 보도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결국 기자 못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언론계를 떠났다. “냉정할 필요가 있겠죠. 너무 격정적이면 감정노동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정치 현안에 쫓기면서도, 감정을 억누르고 사실만 전달해야 하는 존재. 정치부 기자에게 주어진 임무가 그만큼 괴롭고 무겁다는 뜻으로 들렸다.
언론이 정치혐오에 동조해선 안 돼
“국회의원들 욕할 땐 남들 따라서 하지 마세요. 옳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강의는 정치 현안을 둘러싼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반정치주의’와 ‘건설적 비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건설적 비판은 정치가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지만, 반정치주의는 정치 자체를 경멸하고 조롱해서 정치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냉소를 시민 사이에 퍼트린다고 했다. “민주주의가 싫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곧바로 부정할 순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치를 싫어하게 만드는 거죠. 분명히 그걸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가 엉망이라며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 정치인들이 경제발전을 방해한다며 한국 정치를 4류로 깎아내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례로 등장했다. 그는 “민주주의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반정치주의를 확대 재생산한다”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언론의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었다. 정치 뉴스가 맥락이나 배경을 치밀하게 분석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거나 당리당략에 치우쳤다고 비난하는 데서 모든 분석이 멈춥니다.” 성 기자는 단순한 비난은 반정치주의를 조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반정치주의가 가진 위험성을 경고했다. “정치가 부정당하면 정치를 좋게 만들려는 노력까지 부정당할 수 있습니다.”
성 기자는 정치 뉴스를 볼 때 의심을 멈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완전히 객관적인 정치 뉴스는 없습니다. 언론사별로 가지고 있는 정치적 성향이 반영돼 있습니다.” 그는 정치 뉴스에선 팩트와 함께 맥락을 읽어야 하며, 배경과 전망을 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자 또한 자신을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를 끊임없이 의심해봐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균형을 잃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는 다양한 신문을 크로스체크하고 가능하면 원자료를 찾아보라고 권했다.
유튜브 닮아가는 언론
언론이 권위와 신뢰를 잃고 있는 이유가 뭘까. 그는 유튜브 정치 콘텐츠를 원인으로 꼽았다. 직관적 비유로 듣고 싶은 얘기만 들려주는 유튜브 콘텐츠 탓에, 객관적 사실에 바탕해 논리를 펴는 기존 뉴스가 외면당한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선 그냥 확실하게 얘기합니다. 어느 쪽이든 방향성에 관계없이.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거죠. 그 이유가 있어요. 그렇게 해야 돈이 되니까. 광고 수입 때문에 유튜브를 일부러 자극적으로 만드는 겁니다.”
성 기자는 ‘유튜브 따라 하는 언론’을 더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위기에 빠진 언론이 유튜브처럼 정파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월 보수 언론에 실린 한 칼럼을 예로 들었다. 칼럼은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행동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뺨칠 수준인데 죄책감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실종이다. 성현들
은 수오지심이 없는 사람은 교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4·15총선이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라고 적었다. 성 기자는 지금껏 언론이 정부를 비판한 적은 있어도, 대놓고 ‘어느 당 뽑지 말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신뢰를 잃으니까 더 세게 말하죠. 그러니까 또 신뢰를 잃습니다. 악순환인 겁니다.”
성 기자는 지난해 6월 15일치 <한겨레>에 실린 칼럼 한 구절을 소개했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이승한이 정파적 유튜브 콘텐츠를 비판한 글이었다. “누군가를 극단적으로 만족시키는 콘텐츠는 그 ‘누군가’에 들지 못하는 나머지 모두를 극단적으로 배제하는 콘텐츠가 될 확률이 높다.” 그는 “제가 최근에 고민하는 것도 비슷하다”면서 “언론이 어떻게 극단화를 피하면서도 스피커를 설득력 있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성 기자 또한 <한겨레> 유튜브 채널인 한겨레 티브이에서 ‘한겨레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베테랑 기자이자 30만 구독자와 소통하는 유튜버인 그가 짊어진 고심의 무게가 느껴졌다.
탄핵 결정한 헌재 재판관, “유익한 칼럼이었다”
“제가 그렇게 ‘깔때기’ 스타일은 아닌데…”
무거운 공기가 흐르던 강의실에 웃음소리가 번졌다. 언론이 그토록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면, 언론사 입사를 계속해서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성 기자는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농담을 섞었다. 정치부 기자로 살며 느낀 보람을 “제 자랑일 수도 있는데”라는 단서를 달아 들려줬다.
2017년 2월 23일치 <한겨레>엔 그가 쓴 칼럼이 실렸다. ‘만장일치 탄핵해야 통합할 수 있다’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까지 2주 남짓한 시점이었다. 그는 “통합을 위해서는 확실한 심판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가 8 대 0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 정의가 완벽하게 승리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새 대통령이 야당의 손을 잡고 경제 위기와 안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썼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재판관 8명이 인용했다. 기각 의견은 없었다. 만장일치였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한 분이 ‘굉장히 유익한 칼럼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정치부 기자로 일하다 보면 남들보다 앞서서 무언가를 보고 얘기할 기회가 생깁니다. 그렇게 한 얘기가 일리 있다고 인정받을 땐 희열을 느끼죠.” 그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 얼굴이 기자라는 직업을 포장하는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강력하게 도전을 권유하고 있었다. 다른 예비언론인들이 느낀 바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보편 가치 공유한다면 학벌·나이·성향 문제 안 돼
성 선임기자는 “한겨레 수습기자로 입사하는 게 꼭 정답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양한 언론사에서 경험을 쌓고 이직을 준비하는 게 수월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한 예비언론인은 “우회를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우회의 마지노선이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시나요. 네이버 제휴사 정도면 적당할까요”라고 물었다. 성 기자는 “그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국회 정론관에 부스를 가진 신문사, 경제매체 정도면 괜찮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한겨레는 경력기자를 다양한 회사에서, 많이 뽑습니다. 기회는 충분히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한겨레 수습기자 공채에 관심을 보이는 예비언론인이 적지 않았다. 다른 예비언론인은 “한겨레가 지원자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가치나 태도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성 기자는 “한겨레는 스펙트럼이 넓은 회사”라고 대답했다. “한겨레가 지향하는 고유한 가치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든지 평화 통일이라든지. 넓은 가치만 공유할 수 있다면 학벌이나 나이나 성향은 따지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순진한 신문사죠.”
글 조다운 <김창석 기자의 언론사입사준비 아카데미 137기> 수료생
사진 최화진
“지금 상황하고 너무 비슷해 보였습니다.”
성한용 <한겨레> 정치팀 선임기자가 지난 칼럼에 인용한 노랫말을 화면에 띄웠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수록곡 ‘피렌체’였다.
“우리는 분열의 시대 문턱에 서 있네. 구텐베르크는 세상을 변화시켰고 뉘른베르크 인쇄소에선 쉴새 없이 인쇄물이 쏟아지네. 새로운 생각들이 모든 것을 바꾸리라. (중략) 교과서는 대성전을 파괴하고 성경은 종교를, 인간은 신을 파괴할 것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파괴할 것이다.“
15세기 프랑스를 묘사한 가사에서 오늘날 언론이 겹쳐 보였다. 유튜브가 인기를 끌면서 레거시 미디어의 권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사이 언론인을 신뢰하는 시민은 줄어간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불안감을 느낄 예비언론인들을 위해 한겨레 언론아카데미 한터가 연속 특강을 준비했다. 첫 번째 특강이 지난 7일 신촌 한겨레교육문화센터 703호 강의실에서 열렸다. ‘탈진실 시대와 언론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성 기자는 “저도 답을 모르겠어요”라고 자주 말했다. 확답을 내리기보다, 언론이 맞닥뜨린 위기와 언론인이 받아든 과제들을 차분히 짚어나갔다. 강의실을 채운 예비언론인들 얼굴에 착잡함이 묻어나왔다.
정치부 기자는 냉정한 관찰자 돼야
성 기자는 1985년 <서울신문>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35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부 기자로 현장에서 뛰고 있다. 그는 정치부 기자라는 존재를 몇 가지 키워드로 설명했다. 물어뜯는 본능이 살아있는 감시견, 취재원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 가까이 할 수도 멀리 할 수도 없음)의 자세, 특종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등이었다.
그는 정치부 기자를 ‘해설자’에 비유했다. 이슈 가운데 중요한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줘야 시민이 복잡한 정치 현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남들이 잘 못 보는 지점을 가끔 볼 때가 있어요. 누구나 다 알지만 그걸 꿰서 보여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교수님들은 연구하느라 바쁘시고, 소설가들은 얘기해도 잘 안 믿죠.”
정치부 기자는 ‘냉정한 관찰자’가 돼야 한다면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 때 일화를 떠올렸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한 기자는 탄핵안 가결 소식을 보도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결국 기자 못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언론계를 떠났다. “냉정할 필요가 있겠죠. 너무 격정적이면 감정노동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정치 현안에 쫓기면서도, 감정을 억누르고 사실만 전달해야 하는 존재. 정치부 기자에게 주어진 임무가 그만큼 괴롭고 무겁다는 뜻으로 들렸다.
언론이 정치혐오에 동조해선 안 돼
“국회의원들 욕할 땐 남들 따라서 하지 마세요. 옳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강의는 정치 현안을 둘러싼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반정치주의’와 ‘건설적 비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건설적 비판은 정치가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지만, 반정치주의는 정치 자체를 경멸하고 조롱해서 정치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냉소를 시민 사이에 퍼트린다고 했다. “민주주의가 싫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곧바로 부정할 순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치를 싫어하게 만드는 거죠. 분명히 그걸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가 엉망이라며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 정치인들이 경제발전을 방해한다며 한국 정치를 4류로 깎아내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례로 등장했다. 그는 “민주주의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반정치주의를 확대 재생산한다”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언론의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었다. 정치 뉴스가 맥락이나 배경을 치밀하게 분석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거나 당리당략에 치우쳤다고 비난하는 데서 모든 분석이 멈춥니다.” 성 기자는 단순한 비난은 반정치주의를 조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반정치주의가 가진 위험성을 경고했다. “정치가 부정당하면 정치를 좋게 만들려는 노력까지 부정당할 수 있습니다.”
성 기자는 정치 뉴스를 볼 때 의심을 멈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완전히 객관적인 정치 뉴스는 없습니다. 언론사별로 가지고 있는 정치적 성향이 반영돼 있습니다.” 그는 정치 뉴스에선 팩트와 함께 맥락을 읽어야 하며, 배경과 전망을 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자 또한 자신을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를 끊임없이 의심해봐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균형을 잃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는 다양한 신문을 크로스체크하고 가능하면 원자료를 찾아보라고 권했다.
유튜브 닮아가는 언론
언론이 권위와 신뢰를 잃고 있는 이유가 뭘까. 그는 유튜브 정치 콘텐츠를 원인으로 꼽았다. 직관적 비유로 듣고 싶은 얘기만 들려주는 유튜브 콘텐츠 탓에, 객관적 사실에 바탕해 논리를 펴는 기존 뉴스가 외면당한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선 그냥 확실하게 얘기합니다. 어느 쪽이든 방향성에 관계없이.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거죠. 그 이유가 있어요. 그렇게 해야 돈이 되니까. 광고 수입 때문에 유튜브를 일부러 자극적으로 만드는 겁니다.”
성 기자는 ‘유튜브 따라 하는 언론’을 더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위기에 빠진 언론이 유튜브처럼 정파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월 보수 언론에 실린 한 칼럼을 예로 들었다. 칼럼은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행동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뺨칠 수준인데 죄책감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실종이다. 성현들
은 수오지심이 없는 사람은 교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4·15총선이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라고 적었다. 성 기자는 지금껏 언론이 정부를 비판한 적은 있어도, 대놓고 ‘어느 당 뽑지 말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신뢰를 잃으니까 더 세게 말하죠. 그러니까 또 신뢰를 잃습니다. 악순환인 겁니다.”성 기자는 지난해 6월 15일치 <한겨레>에 실린 칼럼 한 구절을 소개했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이승한이 정파적 유튜브 콘텐츠를 비판한 글이었다. “누군가를 극단적으로 만족시키는 콘텐츠는 그 ‘누군가’에 들지 못하는 나머지 모두를 극단적으로 배제하는 콘텐츠가 될 확률이 높다.” 그는 “제가 최근에 고민하는 것도 비슷하다”면서 “언론이 어떻게 극단화를 피하면서도 스피커를 설득력 있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성 기자 또한 <한겨레> 유튜브 채널인 한겨레 티브이에서 ‘한겨레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베테랑 기자이자 30만 구독자와 소통하는 유튜버인 그가 짊어진 고심의 무게가 느껴졌다.
탄핵 결정한 헌재 재판관, “유익한 칼럼이었다”
“제가 그렇게 ‘깔때기’ 스타일은 아닌데…”
무거운 공기가 흐르던 강의실에 웃음소리가 번졌다. 언론이 그토록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면, 언론사 입사를 계속해서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성 기자는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농담을 섞었다. 정치부 기자로 살며 느낀 보람을 “제 자랑일 수도 있는데”라는 단서를 달아 들려줬다.
2017년 2월 23일치 <한겨레>엔 그가 쓴 칼럼이 실렸다. ‘만장일치 탄핵해야 통합할 수 있다’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까지 2주 남짓한 시점이었다. 그는 “통합을 위해서는 확실한 심판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가 8 대 0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 정의가 완벽하게 승리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새 대통령이 야당의 손을 잡고 경제 위기와 안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썼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재판관 8명이 인용했다. 기각 의견은 없었다. 만장일치였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한 분이 ‘굉장히 유익한 칼럼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정치부 기자로 일하다 보면 남들보다 앞서서 무언가를 보고 얘기할 기회가 생깁니다. 그렇게 한 얘기가 일리 있다고 인정받을 땐 희열을 느끼죠.” 그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 얼굴이 기자라는 직업을 포장하는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강력하게 도전을 권유하고 있었다. 다른 예비언론인들이 느낀 바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보편 가치 공유한다면 학벌·나이·성향 문제 안 돼
성 선임기자는 “한겨레 수습기자로 입사하는 게 꼭 정답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양한 언론사에서 경험을 쌓고 이직을 준비하는 게 수월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한 예비언론인은 “우회를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우회의 마지노선이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시나요. 네이버 제휴사 정도면 적당할까요”라고 물었다. 성 기자는 “그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국회 정론관에 부스를 가진 신문사, 경제매체 정도면 괜찮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한겨레는 경력기자를 다양한 회사에서, 많이 뽑습니다. 기회는 충분히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한겨레 수습기자 공채에 관심을 보이는 예비언론인이 적지 않았다. 다른 예비언론인은 “한겨레가 지원자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가치나 태도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성 기자는 “한겨레는 스펙트럼이 넓은 회사”라고 대답했다. “한겨레가 지향하는 고유한 가치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든지 평화 통일이라든지. 넓은 가치만 공유할 수 있다면 학벌이나 나이나 성향은 따지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순진한 신문사죠.”
글 조다운 <김창석 기자의 언론사입사준비 아카데미 137기> 수료생
사진 최화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