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새해맞이 연속 특강] 언론사 준비 계속해도 될까요_ 최재형 KBS PD

  •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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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방송은 사라지지 않는다. ‘프로그램이라는 옷을 벗을 뿐
 
쓴웃음이 저런 거구나 싶었다. “최근에 즐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뭐예요.” 최재형 KBS PD가 물었다. “<플레이어>.” “<편스토랑> 챙겨 봅니다.” “<놀면 뭐하니?> 봅니다.” 예능 PD 지망생들은 거침없었다. PD가 다시 물었다. “본방으로 보세요?” 강의실이 일순간 적막에 잠겼다. “이 장면이 지금 상황을 대변해주는 것 같네요.” PD가 웃었다. 수강생들도 따라 웃었다. 다들 웃고는 있는데, 기뻐서 웃는 기색은 아니었다.
예능, 드라마, 다큐멘터리. 방송사가 만든 콘텐츠를 보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방송사는 전례 없는 적자에 허덕인다. 이 희한한 현실을 PD 지망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겨레 언론아카데미 한터가 준비한 3번째 특강이 지난 13일 신촌 한겨레교육문화센터 703호 강의실에서 열렸다. ‘PD, 여전히 매력적인 직업인가요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최재형 PD는 방송이 사라질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방송을 보는 방식이 프로그램 시청에서 콘텐츠 소비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채용도 실전 능력을 중시하는 경력 채용을 늘리고 있으며, 공감 능력과 표현력 등 PD에게 필요한 자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프라임 타임사라진 지상파
 
최재형 PD1997KBS에 입사했다. 그가 쌓아온 경력엔 눈길이 간다. 2005<날아라 슛돌이>, 2009<천하무적 야구단>, 2015<청춘FC>를 연출했다. 지난 2월까진 <씨름의 희열> 책임 프로듀서(CP)를 맡았다. ‘스포츠 예능 창시자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을 만큼, 그가 방송계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그런 그가 방송이 마주한 위기를 털어놨다. “방송산업이 도저히 수지타산이 안 맞는 산업이 된 것 같아요.” PD는 방송산업 현실을 과잉공급 상태로 분석했다.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했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은 도전에 맞서고자 새로운 프로그램을 공격적으로 제작했다. 제작비도 늘렸다. 하지만 방송사 수익을 떠받치는 광고 시장 규모는 되레 줄었다. ‘본방 사수는 옛말이 됐고, 시청자들은 다양한 플랫폼으로 빠져나간다. 수요는 흩어지는데 공급은 여전한 셈이다. PD는 겉보기엔 멀쩡해도 방송산업이 처한 현실이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올해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지상파 방송사들은 벌써 적자를 몇백억씩 냈어요. 종편도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죠. 제작비가 너무 올랐으니까요.”
방송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게 프라임 타임 편성표. 프라임 타임이란 주말 황금 시간대, 곧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를 뜻한다. 시청률이 높고, 프로그램 앞뒤에 붙는 광고가 비싸다. 방송사도 거액을 투자한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등 공을 들여왔다.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다. “KBS에서 일요일 저녁 6시에 하는 프로그램 보신 적 있으세요? MBC에선 뭐 하는지 아시나요? <복면가왕> 보세요?” 꼬리를 무는 물음에도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다들 관심이 없죠.” PD가 입을 열었다. “상업방송인 SBS는 발 빠르게 그 시간대에 투자를 안 해요. 토요일 저녁을 버렸어요. 아마 <골목식당> 재방송할 거예요.” 그는 방송산업은 이제 끝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죠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프로그램에서 콘텐츠로
 
방송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면, 방송사 PD에 도전하는 건 무모하지 않을까. 최재형 PD“PD 수요는 계속 있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방송사 재정 위기는 방송산업이 몰락하고 있다는 징조가 아니라, 방송산업이 프로그램 중심에서 콘텐츠 중심으로 바뀌는 신호라는 뜻이었다.
PD는 유튜브 영향력이 커진다고 해서 방송이 망하진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주변을 보면 콘텐츠를 보는 사람이 많죠. 그런데 유튜브 콘텐츠 절반 이상은 방송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이에요.” 유튜브가 지상파 방송을 위협하는 듯 보이지만, 방송사 역시 유튜브에 콘텐츠를 공급한다. 외려 플랫폼 콘텐츠 다수가 방송사에서 만든 것들이다. PD는 이런 환경에서 방송사만이 가지는 강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잘하는 방송사 PD가 만든 프로그램이 1인 크리에이터 콘텐츠보다는 짜임새랄지, 콘텐츠로서 갖는 가치는 나은 경우가 많죠.”
PD는 시청자가 방송을 소비하는 방식을 바꾼 게 현 상황의 본질이라고 짚었다. “지금의 위기는 콘텐츠 산업 자체가 망한 것이라기보단,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었는데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는 거죠.” 그는 특히 지상파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시청률을 올리려고 큰돈 써서 론칭을 했는데 안 되면 타격이 너무 커요. 그렇다고 소규모 프로그램을 만들자니 지상파답지 않죠. 그 중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변화는 방송계 용어까지 바꾸어 놓았다. “요즘 달라진 것이,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프로그램이라는 단어를 낡고 고루하단 느낌으로 쓰는 것 같아요. 그보단 콘텐츠라는 표현을 좋아하죠.” PD는 두 개념에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은 시간 되면 티브이 앞에 모이는 시청자를 노리죠. 그런데 콘텐츠는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소비자에게 접근해요.” 방송산업이 노리는 타깃층이 정해진 시간에 티브이 앞으로 나오는 수동적 시청자에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보는 능동적 소비자로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신입 PD 성공 확률은 30%
 
경영난에 처한 기업은 인건비부터 줄인다. 위기에 빠진 방송사도 신규 채용을 줄였다. 특강에 찾아온 PD 지망생들은 방송사에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PD가 내놓은 답은 조금은 매정했다. “신입이 들어오면 전부 다 PD로서 밥값을 하느냐, 절대 그렇지 않아요.” 강의실에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냉정한 답변은 최 PD가 경험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10명을 뽑았다고 칠게요. ‘이 기수는 너무 잘해라고 해도 3~4명만 잘해요. 나머지는 냉정하게 얘기해서 PD를 하면 안 되는 경우죠.” 10명 중 3, 확률로 30%. 방송사는 30%라는 성공 확률을 믿고 경력 없는 사회 초년생을 PD로 채용한다. 문제는 방송사가 신입 PD10명이나 뽑지 않는다는 것이다. PD 채용 규모는 한 해 2~3명꼴로 줄었다. 30%가 성공한다면 0.9명이다. PD한해 2~3명을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그중 1명도 PD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거예요라고 했다. 이런 일은 한 해에 그치지 않는다. “회사 기수 표를 보면, 같이 데리고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1명도 없는 기수가 있어요. 3년간 계속해서 그런 적도 있고요.”
PD는 늘어난 경력 채용 또한 신입 채용 감소 이유로 꼽았다. “2010년 전후로 OBS라는 방송사에 있던 PD 몇 명이 경력 공채로 KBS에 들어왔죠. 근데 너무 잘해요. 2명 중 1명은 예능국 주력 선수가 될 만한 자질이 보이는 거예요. 실패할 확률이 낮잖아요. 그래서 경력을 더 많이 뽑게 되는 거죠.”
경력 채용을 생각하면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방송사 간판, 맡았던 직책 같은 경력의 벽이다. PD지난 몇 년간 어떤 방송사에 있었는지는 잘 안 봐요라고 말했다. “어떤 프로그램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봐요.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소속이나 신분은 중요하지 않죠.” 천편일률적인 신입 공채보다, 과감히 현장으로 나가 실무 능력을 쌓는 게 PD가 되는 데 유리할 수 있단 뜻이었다.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얘기지만, PD라는 직업에 맞는 사람에겐 기회일 수 있다는 거죠. 이제 무력한 사람은 안 뽑아요. 냉정해졌죠.”
그렇다고 공채를 무작정 포기하진 말라고 충고했다. “신입 공채를 포기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에요. 준비를 하되, 신입 공채 문이 너무 좁아져서 ‘PD를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신다면, 다른 길도 있다는 말씀을 드린 거고요. 여러분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이 공채가 아닌 길을 걸어서 KBS 예능국 PD로 일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공감 능력이 실력이다
 
‘PD가 가져야 할 능력이란 정확히 뭘까. PD물론 편집 능력이라고 하면서도, 편집을 잘하는 데엔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건 공감 능력이었다. PD는 베테랑 선배들도 공감 능력을 가르쳐줄 순 없다고 했다. “공감은 훈련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공감은 논리랑 다르죠. 다큐멘터리도 논리만 갖고 편집이 되진 않거든요.” PD<12> 담당 PD를 맡았던 때를 떠올렸다. “전원일기라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멤버들이 시골 마을에 가서 하루 동안 어르신들 아들 노릇을 하는 에피소드인데, 촬영 끝나고 멤버들이 휴대폰에 인사말을 담아서 선물로 보낸 거예요. 할머니들이 그걸 받아본 표정이 어떻겠어요.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할머니들이 영상을 보고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못 잘라야 해요. 근데 신입 PD가 그걸 멘트에 맞게 딱딱 잘라놨어요. 그런 사람들은 가능성이 없다고 봐요. 다른 사람들이 지금 뭘 느끼는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나도 느낄 수 있어야 해요.”
다음으로 소통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단순히 공감하는 걸 넘어, 창의적이면서 설득력 있게 편집해 전달하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편집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거기에 특화된 지능이 필요하죠. 훈련도 해보고, 남들이 해놓은 편집을 흉내도 내면서 자기 걸로 만들어가는 거예요.”
 
PD 되고 싶나생각하라
 
강의 막바지, PD는 특강 주제를 되뇌었다. PD가 여전히 매력적인 직업인가. 그는 자신이 왜 PD가 되고자 하는지에 따라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방송산업이 어려워지고 PD로 살아남는 게 녹록지 않아진 건 사실이지만, PD라는 직업이 갖는 매력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PD는 조연출 생활을 거치는 건 힘들지만, 그만큼 보상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협업이 중요하고 희생정신도 필요한 일이지만, 반면에 자기가 죽도록 하고 싶은 일이면 할 수 있다는 거죠. 그걸 도와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거든요.” 그는 2015년에 연출한 <청춘 FC>를 떠올렸다. “<청춘 FC>는 제가 가장 애착을 갖는 프로예요. 2015년에 회당 1억을 더 썼으니까. 열심히 했으니까 그런 돈 많이 드는 프로도 하게 해주더라는 거죠.”
육체적으로 마냥 힘든 직업도 아니라고 했다. “프로그램을 바쁘게 안 할 때는 생각보다 자유로운 시간도 많아요. 지금 <씨름의 희열> 끝나고 우리 팀 후배들은 회사 나오고 싶을 때 나와요, 심심할 때만. 쉬라고 했고, 또 쉬어야 일을 하니까. 지금 당장 급한 일 없으면 PD들끼리 영화 보고와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바쁠 때 그러면 미친 거고.” 강의실에 웃음소리가 번졌다.
PD는 누군가 다시 태어나도 PD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거라 했다. “PD라는 직업의 제일 큰 매력은 세상에 내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거죠. 심지어 예능프로그램에도. 내가 만들고 편집한 프로그램엔 내 메시지가 담길 수밖에 없거든요.”
 
글 조다운 <김창석 기자의 언론사입사준비 아카데미 137> 수료생
사진 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