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새해맞이 연속 특강] 언론사 준비 계속해도 될까요_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

  •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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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세상 보는 시각을 바꾸는 모든 뉴스가 탐사보도다

 장면 하나. 수염 자국 거뭇한 남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다. 손에 뭔가를 들고 있다. ‘세라복’이라 불리는 일본 여학생 교복이다. 블라우스와 치마가 한 벌로 붙어있는데도 상반신을 겨우 덮을 듯 짧다. 경찰이 변태 성매매 업소를 단속했다는 KBS 뉴스 리포트다. “제 기자 생활 굴욕을 상징하는 장면이죠.”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가 13년 전 자신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장면 둘. 짧은 스포츠머리,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 평범한 차림새의 남자들이 사람들을 끌어낸다. 누구는 바닥에 넘어지고, 다른 누구는 양팔이 붙들린 채 소리를 지른다. 2008년 8월 8일, 사복경찰이 사장 해임에 반대하는 KBS 직원들을 진압하는 모습이다. 심 기자는 화면 속 아수라장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첫 번째 장면은 자극적 시각 자료, 이른바 ‘그림’에 의존하는 방송뉴스의 한계를 보여준다. 두 번째 장면은 정치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국 언론 현실을 상징한다. 심 기자는 기자가 되기 전 꿈꿨던 언론의 모습과 너무도 다른 현실을 겪으면서 방황했다고 털어놨다. 그가 탐사보도 전문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내 커리어의 종착지”라고 단언하는 건 자연스러워 보였다.
 한겨레 언론아카데미 한터가 준비한 4번째 특강이 지난 3월20일 서울 신촌 한겨레교육문화센터 703호 강의실에서 열렸다. ‘독립언론 기자로 살기’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심 기자는 사회가 급변해도 탐사 저널리즘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기자라는 직업이 주는 보람 역시 사라지지 않을 거라며, 예비 언론인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KBS 퇴사 이유, “기자 더 잘해보려고”

 심인보 기자는 2005년 KBS에 입사했다. 그 해 KBS 자기소개서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2명을 적었다. 간디와 마르크스였다. “둘의 방법론을 섞어서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죠.” 기자 지망생 심인보는 총칼이 아닌 펜과 마이크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너무 싫었어요, 기자 생활이.” 1분 20초짜리 리포트에 담을 수 있는 말은 짧은 문장 7개가 전부였다. 세상을 바꾸기엔 비좁은 공간이었다. 사표도 써보고, PD 전직도 고민했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이른바 ‘8·8 사태’는 결정타였다. 2008년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이 정부 압력으로 물러났다. 직원들이 해임을 막아보려 했지만, 경찰기동대 600명이 회사에 들어와 이들을 진압했다. 회사 분위기가 달라졌다. 시사 프로그램이 하나둘 폐지되기 시작했다. 보도국에서 탐사보도팀이 사라졌다. 사장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을 <9시 뉴스>에서 다루던 회사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이 직장이 싫지만 그래도 괜찮은 직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너무 많은 게 달라졌죠. 이때부터 거꾸로 각성을 했습니다.”
 퇴사를 꿈꾸던 직장인은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는 기자로 거듭났다. KBS 노조는 2010년, 2012년, 2014년에 공영성 회복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기자들은 일하면서 싸웠다. 2012년 파업 땐 ‘리셋 KBS 뉴스’를 만들어,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을 보도했다. 심 기자 역시 대선 기간 ‘박근혜 불법 선거 운동(십알단)’ 사건을 단독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었다. “KBS가 바뀌길 기다리다간 제 기자로서의 전성기가 다 지나가버릴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2015년 12월 그는 사직서를 냈다. “밖으로 나가면 기자 역할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가 더 나은 기자가 되고자 찾아간 곳은 <뉴스타파>였다.

광고와 보도 사이 ‘방화벽’이 무너졌다

 <뉴스타파>는 2012년에 만들어진 비당파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다. 모든 운영비를 회원들이 낸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유튜브에 올리는 뉴스에도 광고를 싣지 않는다. “저희의 핵심 정체성과 관계되기 때문에 유튜브 광고조차 안 받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뉴스타파> 1년 예산은 약 50억원. 연간 수백억에서 수천억을 쓰는 제도권 언론에 비하면 작은 규모다.
 작은 규모에 견줘 성과는 화려하다. 2013년 조세회피처 문서를 입수해 보도했고,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알렸다. 2015년엔 ‘친일과 망각’ 보도로 친일파 후손 1100여명을 추적했다. 2016년엔 삼성 이건희 회장 성매매 영상을 공개했다. 2018년엔 ‘장충기 문자’, 2019년엔 ‘박수환 리스트’를 보도해 정치권·재계·언론의 유착관계를 고발했다. 전 직원이 40여명에 불과한 탐사보도 전문 독립언론이 만든 결과물이다.
 <뉴스타파>가 특종을 많이 했다는 건, 기성언론이 그만큼 낙종을 했단 뜻도 된다. 그는 기성언론이 낙종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짚어나갔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었다. 기성언론은 매일 지면과 방송 시간을 채워야 한다. 쏟아지는 이슈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일손이 달린다. 탐사보도엔 돈과 시간, 인력이 든다. 긴 시간을 취재하고도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 탐사보도 확대를 외치는 언론이 많아도, 탐사보도로 성과를 내는 언론은 많지 않은 이유다.
 광고주 문제도 있다. 2016년 7월 21일 <뉴스타파>가 이건희 회장 성매매 영상을 공개했다.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성매매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다음 날 이 소식을 전한 언론사는 <한겨레>와 <경향신문>뿐이었다. 대다수 방송과 신문은 삼성 총수의 성 추문을 보도하지 않았다. “삼성이 제도권 언론 최대 광고주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언론이 삼성 문제에 무관심한 현실은 역설적으로 삼성이 언론에 미치는 영향력을 증명한다. “광고국과 편집국 사이에 칸막이가 있어야 해요. 우리도 그게 있다고 믿고, 언론도 있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한국 언론 현실에선 그 방화벽이 무너진 지 오래됐습니다.” 광고를 싣지 않는 <뉴스타파>의 원칙이 세상 물정 모르는 옹고집이 아니라, 차별화된 특종을 만들어내는 무기처럼 느껴졌다.

‘정파성 요구’는 독립언론이 풀 과제

 “변절을 해도 참 더럽게 하네. 재벌한테 돈 받았냐?” “고맙습니다, 뉴스타파. 미안해요!”
 댓글을 보는 내내 어지러웠다. 욕설이 칭찬으로 바뀌는 데 두 달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7월 9일, <뉴스타파>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의 변호사법 위반 의혹을 뒷받침하는 녹취록을 공개했다. 당시 윤 후보자는 부패 혐의로 조사받던 전직 용산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법조 공무원이 변호사를 알선하는 행위는 위법이다. 윤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변호사를 소개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공개한 녹취록엔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그의 목소리가 들어있었다. 영상은 ‘좋아요’ 3000개, ‘싫어요’ 1만 1000개를 받았다. 욕설과 비아냥이 댓글 창을 채웠다. <뉴스타파> 회원 3500명이 후원을 취소했다. 보도 1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법무부장관 인선과 함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조국 후보자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나오던 때였다. 9월 6일, 검찰이 조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씨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2개월 전 영상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뉴스타파가 제대로 보도했네.” “후원하는 보람이 느껴집니다.” 달라진 사실은 없었다. 검찰총장이 된 윤석열이 여당 지지자들에게 비난받고 있다는 것 말고는.
 “이게 제일 큰 고민인 것 같아요.” 심 기자는 <뉴스타파>가 직면한 문제로 정파성을 요구하는 시민을 꼽았다. “한국적인 상황에선 특히 그래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게 사회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죠.” 이는 <뉴스타파> 탄생과도 얽혀있다. 2012년 대선 직후 <뉴스타파> 후원회원이 급증했다. 약 2만여명이 후원을 시작했다. 보수 정부에 실망한 사람들, 정권을 바꾸려면 ‘우리 편’인 언론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 시민들이 나선 결과라고 그는 분석했다. 그러나 뉴스타파는 비당파 독립언론을 지향한다. 정치적 동반자를 원하는 후원자와 진실을 보도하려는 기자 사이에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갈등이 커질수록 후원금은 줄어든다. <뉴스타파> 존립이 흔들린다. “예전처럼 보편적인 시청자, 보편적인 독자를 상대로 서비스해서 먹고사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거예요.”
 그래도 그는 낙관적 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뉴스타파>와 후원자가 장기적인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런 일을 한 번 겪고 나면, 그 다음엔 우리가 자기 정파성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해도 참아주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하는 거죠.”

저널리스트로 산다는 건 “엄청난 특권”

 “일단 KBS에 있을 때보다 월급은 줄었어요.” 질의응답 시간, 심 기자는 질문을 받기도 전에 달라진 지갑 사정을 고백했다. 강의실에 웃음소리가 번졌다. “그래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적진 않아요.” 회사 내부정보라 밝히긴 어렵지만, 독립언론이라고 해서 터무니없는 박봉으로 사람을 쓰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탐사보도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 파쇄된 서류를 더듬더듬 맞춰보는 기자들. 멋있지만 고된 일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가 내놓은 답은 의외였다. “오히려 ‘워라밸’(일과 개인 삶 사이의 균형)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일간지나 방송사 기자는 출입처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처리하고, 정해진 분량 이상의 기사를 출고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심 기자는 탐사보도엔 정해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기자 한 명이 한 달에 1건 정도 쓰려나. 야근도 내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만 해요. 일간 매체보단 덜 소모적이죠.”  
 한 수강생이 “일반 보도와 탐사보도의 다른 점”을 물었다. 자연스레 심 기자가 생각하는 탐사보도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탐사보도는 범죄 수사와 비슷하다. 제보, 증언, 문서 분석 등으로 취재 대상의 부정을 입증해 보도한다. 그가 정의하는 탐사보도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은 머릿속에 사회에 대한 지도를 갖고 있어요. 여러분도 한 장씩 갖고 있죠. 한국은 어떤 사회인지, 정부는 어떻게 운영되고, 사람들은 어떤지. 저는 그 지도를 넓히거나 고쳐주는 보도는 전부 탐사보도라고 생각해요.” 그는 천관율 <시사인> 기자가 쓴 일간베스트 저장소 분석 기사(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를 좋은 탐사보도로 꼽았다. 단순히 ‘암적인 존재’로 뭉뚱그려진 이들을 심리학과 빅데이터로 분석함으로써, ‘일베’라는 사회 현상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 기자는 “기자라는 직업은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기자라고 특별한 전문성을 갖고 있진 않다. 남달리 현명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회는 기자에게 여론을 만드는 역할을 준다.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서 사회를 바라보고, 그걸 정리해서 공중에게 보여주고, 그렇게 공중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건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엄청난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그의 목소리에선 자부심이 묻어나왔다. “언론사는 망해도 저널리즘은 사라지지 않는단 말이 있잖아요. 사회가 어떻게 변해도 저널리즘은 중요할 거라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여러분이 저널리스트가 되는 걸 권하고 싶어요.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조다운 <김창석 기자의 언론사입사준비 아카데미 137기> 수료생
사진 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