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새해맞이 연속 특강] 언론사 준비 계속해도 될까요_양지열 변호사

  • 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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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당신만의 ‘맥플러리’를 만들어라

 옷차림에 눈이 갔다. 양지열 변호사(법무법인 에이블)는 갈색 정장에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다. “오늘 상암동에서 MBC 기자하고 점심을 먹는데…” 그가 들려준 이야기 대부분은 방송사가 모여 있는 서울 상암동을 배경으로 삼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침 라디오부터 저녁 뉴스 프로그램까지, 그는 하루 평균 2~3개 방송에 출연하고 있었다. 딱딱한 구두를 밀어낸 편안한 운동화가 쉴 새 없는 그의 일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한겨레 언론아카데미 한터가 준비한 마지막 특강이 지난 3월 2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교육문화센터 805호 강의실에서 열렸다. ‘언론사 경력이 다른 일할 때도 도움 되나요?’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양 변호사는 기자 생활이 “제너럴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데 가장 좋은 밑바탕”이라고 말했다. 언론사에서 얻는 넓은 시각과 다양한 현장경험은 어떤 전문지식과 만나도 시너지 효과를 낼 거라고 강조하면서,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라고 권했다.

신문기자에서 늦깎이 변호사로

 양지열 변호사는 ‘변호사’라는 단어에 오롯이 담을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1994년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 제5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됐다.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8권의 책을 쓴 작가이자, 등 지상파와 종편을 가리지 않고 활약하는 시사평론가다.

 그가 기자를 첫 직업으로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뭘 잘 몰랐어요. 기자들 보니까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 많아 보이더라고요. 사회부 가면 사건·사고 추적하고, 문화부 기자를 하면 연극도 공짜로 볼 수 있을 거 같고. 잘 모르면서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거예요.” 기자가 된 그는 사회부 사건팀, 문화부 문학 담당 기자 등을 거쳤다. 2000년엔 <중앙일보> 인터넷판인 조인스닷컴에서 대중문화 팀장을 맡기도 했다.
 입사 8년 차에 회의감이 찾아왔다. 검사, 소설가 등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을 만날 때면 공허함을 느꼈다. “내가 전문적으로 아는 게 정말 없네. 내 전공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거예요. 목마름이 생기더라고요.” 변호사라는 직업에 마음이 끌렸다. “두 직업 사이에 맥락이 이어져요. 기자는 자기가 보고 들은 것들을 잘 정리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죠. 변호사의 가장 큰 업무는 의뢰인 얘기를 듣고 사실관계를 정리해서, 판사를 설득하는 거예요.” 그는 2002년 사직서를 냈다. 32살에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200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2011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40살에 변호사가 됐다.   

기자로 산 8년, “가장 좋은 베이스”

 “참 잡다하게 살았죠? 그런데 그 잡다함이 방송에선 통하더라고요.”
 양 변호사는 여러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방송에서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8년간의 기자 생활을 가장 보람 있는 경력으로 꼽았다. “기자를 하다 보면 잡다한 경험을 쌓게 되는데, 그 잡다함이 전문지식이랑 만나면 시너지가 생기더라고요. 그 시너지가 다른 어떤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한 것 같아요.”
 그는 기자 생활에서 배운 ‘메시지를 명확하게 다듬는 법’, 이른바 ‘야마’ 잡는 능력을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 법대 나와서 22~23살에 사법시험 붙은 친구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은 방송에 앉혀놓으면 말을 못해요. 말을 해도 통역이 불가능하죠.” 시청자가 법리와 법률용어를 속속들이 알긴 어렵다. 풀어서, 간단하게 설명해줘야 한다. 단순히 법률지식이 많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자 할 때 선배들이 많이 하는 말이 그런 거였어요. 야마를 어떻게 잡을지, 글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은 뭔지. 이걸 7~8년 훈련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얘기하면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방송사에서 저를 부르기 시작한 거예요.”
 신문 기사를 다룬 것도 도움이 됐다. 방송에 나오는 전직 기자 대부분이 신문사 출신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방송에서 토론회를 하면 방송기자가 훨씬 잘할 것 같죠. 그런데 패널로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문 출신이에요. 왜 그럴까요. 방송은 휘발성이 강해요. 화면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화면을 먼저 생각하거든요.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말로, 글로 정리해내는 능력은 방송기자보다 신문기자가 더 뛰어날 수밖에 없어요.” 영상 없이, 긴 글을 정리해본 경험이 사회 현안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밑바탕이 됐다.
 그는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기자 경력은 훌륭한 자산이 될 거라고 말했다. “제가 팀장 때 후배들한테 많이 했던 얘기가 있어요. 맥플러리라고 아세요?” 맥플러리는 맥도날드에서 파는 디저트다. 소프트아이스크림에 쿠키, 과일 시럽 등을 넣어서 만든다. “맥플러리에 들어간 건 빻은 쿠키가 전부잖아요. 원가로 치면 100원 더 쓰는 건데, 가격은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비싸요. 그게 가진 특별한 맛이 있기 때문이죠. 여러분 각자가 맥플러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베이스예요. 아이스크림이 있어야죠. 그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가장 좋은 직업이 기자예요.” 기자 생활을 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렇게 쌓은 경험이 어떤 분야에서든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재취업, ‘타이틀’에 집착하면 안 돼

 기자 경력이 훌륭한 자산이라면, 그 자산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은 뭘까. 법조인처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 양 변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타이틀이 가진 의미는 없다고 봐요.” 그는 사회적 지위만 보고 직업을 선택해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재취업을 생각하는 기자 중 많은 수가 로스쿨에 진학한다. 법조인의 사회적 지위가 여전히 높은 반면, 사법시험이 사라지면서 진입 장벽은 낮아졌기 때문이다. 양 변호사는 로스쿨 진학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제가 변호사 2년차 때 로스쿨 졸업생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지금 변호사 시장이 최악의 상황이에요. 글자 그대로 굶는 변호사도 생기는 시대죠. 자꾸 내몰리는 상황이에요.”
 그는 사회적 평판이 좋은 직종을 선택하려 하지 말고 자기 능력을 키우라고 강조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장이 ‘간판’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단 뜻이었다. “나는 기자가 됐으니까 그걸로 끝이야, 변호사가 됐어 끝이야, 이런 삶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사회 어느 분야나 다 그래요. 직종이 아니라 자기 브랜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직업을 선택하셨으면 좋겠어요.”
 양 변호사는 자기계발을 멈추지 말라고 얘기했다. “세상이 정말 하루가 다르게 변해요. 적어도 IOS 업그레이드 속도로 자기계발을 해야 뒤처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는 주기적으로 앱스토어에 들어가 새로 나온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하고, ‘왓챠’와 ‘넷플릭스’에 가입해 해외 드라마도 챙겨보고 있다고 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변화하는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세 꼰대가 돼요. 관심을 잃는 순간 바보가 되기 쉬운 세상이 됐어요.”

좋은 문체 따라 해야 좋은 글 쓸 수 있다

 질문이 이어졌다. 한 예비언론인은 면접에서 거듭 떨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자신이 “반골 기질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데, 그것이 취업에 문제가 되느냐고 물었다. 양 변호사는 “면접은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면접은 결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녜요. 어느 정도 사회적 표준이라고 여겨지는 선을 넘지 않으면서 얘기해야 해요. 본인이 스스로 반골이라 생각할 정도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죠. 본인은 스스로 설득을 하겠죠. 난 솔직한 거야, 나를 이대로 인정받고 싶어. 그런데 의외로 세상은 그렇지 않아요.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가면 하나쯤은 있어야 해요.”
 다른 예비 언론인은 “글을 잘 쓰기 위해 유념할 것이 있는지” 물었다. 양 변호사는 검증된 문체를 흉내내보라고 권했다. “어떤 종류의 문장이든 좋으니까, 잘 쓴 글을 한번 흉내 내보세요. 언론사 글을 베껴 쓰는 건 별 도움이 안 될 거예요. 언론사 글은 테크닉인데, 테크닉만 가지고는 맛이 안 나요. 테크닉에 더해 자기 색깔이 비쳐야 하죠.” 원론적인 얘기처럼 들렸다. 그는 “너무 원론적인가요”라고 되물으며 멋쩍게 웃었다. “사실 저는 지금도 그런 방법을 써요.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나도 이런 문체를 따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가 원론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진짜 진리일 때가 많습니다.”  

글 조다운 <김창석 기자의 언론사입사준비 아카데미 137기> 수료생
사진 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