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어요] '박정희, 독도를 덮다' 펴낸 이재석 KBS 기자

  • 201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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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한터로 책이 한 권 배달됐다. <박정희, 독도를 덮다>는 제목이 달렸다. 저자 이름이 낯익다. 이재석 기자는 내가 강의를 시작한 2004년 첫해 수강생이었다. 강의를 들은 다음해인 2005년 1월 KBS에 입사했다.
입사 후 사회부와 탐사제작부 등을 거쳐 현재는 국제부에서 일하는 12년차 기자인 그가 첫 책을 낸 것이다. 2015년 6월 ‘시사기획 창’에서 다룬 다큐멘터리 ‘독도밀약설을 추적하다’를 만든 것을 계기로 썼다고 한다. 이른바 ‘독도밀약설’의 실체를 밝힌 이 다큐멘터리는 2015년 6월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의 보완적 성격으로 쓴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새롭게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에서 공개된 자료만이 아니라 방송 이후 확보한 일본 외무성 자료를 가장 중심에 놓고 내용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3가지 정도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첫 번째는 독도밀약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했는가에 대해서다. 두 번째는 독도문제를 어떻게 푸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다. 세 번째는 이 문제를 다루는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기자가 논픽션 책을 많이 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기자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 문제의식과 맥을 같이 하는 내용이 책의 프롤로그에 있었다. 내용이 좀 길지만 그 부분을 소개해보겠다.
 
“언론의 홍수고 정보의 쓰나미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론은 자율성을 상실해 성역 없는 보도가 불가능한 상태다. 또 한편으로는 진영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론이 진실과는 별개로 진영에서 선호하는 기사를 출고하고 있는 게 지금 우리의 풍경이다. 모든 기사는 금세 휘발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기사에 동의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에게만 선별적으로 유통될 뿐이다. 언제부턴가 ‘좋은 기사’는, 미처 몰랐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교정해주는 기사가 아닌, 자기 확신을 더욱 강화해주고 지지해주는 기사가 되어 버렸다. 이런 거대한 구조를 바꿀 힘이 없는 언론인 개인이 택할 수 있는 탈출구 중 하나는 자신만의 언로(言路)를 따로 마련하는 일이다. 꼼꼼한 취재를 토대로 ‘실체적 진실’에 최대한 접근하고 그것을 논픽션 형태로 남겨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박정희, 독도를 덮다>의 프롤로그 중에서)
 
반가운 마음에 이재석 기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재석 기자는 준비생 시절에도 글쓰기에 대한 욕심이 있는 제자였기 때문에 책을 쓴 이유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2015년 탐사제작부에서 일했는데, 매주 화요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시사기획 창’을 만들었습니다. 기자가 직접 만드는 50분짜리 다큐멘터리인데 다른 곳에는 없는 형식이고 KBS에만 있는 프로그램 형식입니다. <시사매거진 2580> <취재파일 K>도 있지만 시간이 짧습니다. 지금 JTBC에서 스포트라이트를 진행하시는 이규연 선배나 세계일보 탐사팀이 한국 언론 역사에서 본격적인 탐사보도 1기였다면 KBS 탐사팀은 1.5기 정도 되는데 정연주 전 사장 시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1분반짜리 9시뉴스 리포트 기사로는 묵직한 문제의식을 다루기는 힘들기 때문에 기자들에게 5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맡겨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예전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제가 다뤘던 주제는 방송으로 하기에는 애초부터 버거운 것이었어요. 일본 외무성 자료를 중심에 놓고 풀어가야 하는데 글을 화면에서 계속 보여주는 것은 피로감이 있고 전달도 안 되고. 자료의 맥락이나 전후사정을 세세히 풀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방송을 한 뒤에도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글이나 책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 텍스트의 한계를 방송이 확장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방송의 한계를 텍스트가 극복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그런 한계를 느낀 적이 자주 있나요?

= 종종 있죠. 자료가 글 중심일 때 그렇기도 하지만, 방송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직접적으로 표출하기 힘들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책은 저자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에 쓰고 싶더라구요. 책 중에 5장의 내용은 제 생각을 많이 담은 부분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책이 만족감을 많이 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자신만의 만족감일 수도 있지만요(웃음).
 
- 방송된 것에 더해서 자료를 더 찾아보고 그것을 책으로까지 내게 된 이유가 따로 있었는지요? 이 주제에 대해서 천착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나요?
= 작년이 광복 70주년이었고, 일본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베는 나쁘다, 위안부 할머니는 불쌍하다는 식의 얘기는 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고 있는 것이잖아요. 비슷한 얘기를 더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어요. 기존 통념은 ‘만주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가 결국은 독도를 팔아먹었다’는 식인데 그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 그래서 ‘독도를 덮었다’는 제목이 중의적이라고 느꼈는데, 이 문제를 은폐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거나, 현실적인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뜻도 담고 있는 것 아닌가요?
= 맞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박정희를 ‘까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독자도 계실 텐데 뒤로 갈수록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산 사람들은 분명히 박정희를 시원하게 까줬으면 하는 생각을 할 테니까요.
 
- 그런 점에서 ‘독도밀약’이라는 용어도 사실은 ‘독도 막후교섭’ 정도로 부르는 게 맞지 않느냐는 지적도 책 후반부에 했던데요.
= 맞습니다. 책을 꼼꼼히 읽으셨네요(웃음).
 
- 책을 쓰니까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쓰기 전에는 몰랐던 장점은 있던가요?
= 자족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신문기자이든 방송기자이든 자기가 취재한 내용을 보도한 뒤에도 뭔가 미진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어찌됐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몽땅 다 기록으로 남겨놓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게 자족일 수밖에 없는 것은 요즘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파편화된 정보만을 얻는 실정이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저자 스스로의 자족이라는 생각도 듭니다(웃음).
 
- 책이 나온 지 1주일인데, 반응은 없나요?
= 아시아경제신문에서 서평 기사를 하나 썼구요. 아 참, 고종석 선생님이 트위터에서 좋은 말을 해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3시간 안에 독파하는 독도의 모든 것, 강추”라고 하셨어요.
 
- 글을 곧잘 쓰던 제자들도 방송기자가 된 뒤에는 ‘글을 쓸 기회가 없어져서 글쓰기 능력이 쇠퇴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요즘에는 신문기자보다는 방송기자를 1순위로 생각하는 준비생들이 약간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들에게 글쓰기와 관련해서 해주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방송기자들의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왔습니다. 방송기사는 크게 단신 기사와 리포트 기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1분반짜리 리포트 기사는 여전히 취재 기자들이 쓰지만, 세 문장짜리 단신기사는 취재부서에서 더 이상 쓰지 않습니다. 대신 디지털 기사를 써야 합니다. 사진이나 동영상과 함께 긴 글로 디지털 기사를 쓰는 겁니다. 방송기자가 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분량이 꽤 있고, 스토리텔링도 있는 글을 써야 합니다.
 
- 포털사이트에 보면 SBS 기자들이 쓰는 취재후기들이 올라오는데 긴 글인데도 어떤 글은 조회 수가 수천 건이 넘어가기도 하던데요?
= KBS 기자들도 ‘취재 후’라는 글을 쓰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취재후기이고 이제는 취재후기 말고도 기사 자체를 디지털용으로 쓰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신문기자나 통신기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봐야하겠습니다. 방송기자로 입사해도 이제는 긴 글을 많이 써야 하는 조건이 됐습니다.
 
- 방송기자가 글을 많이 써야 한다면 책을 쓰는 방송기자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겠는데요?
=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기본적으로 책을 쓰려면 어느 한 분야나 주제에 대해 천착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 시간을 확보하는 게 관건인 것 같습니다. ‘시사기획 창’이라는 프로그램이 기자들에게 좋은 것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입니다.
 
-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사례로 보면 기자가 쓴 논픽션 책들이 많고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문화가 부럽던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 맞습니다. 그런 책들을 그 사회가 인정해준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기자들이 쓴 좋은 논픽션 책들을 학자들이 인정해주는 사례도 있구요. 우리나라는 사실 기자들이 쓰는 책 중에서 논픽션이라고 인정할 만한 책들이 그렇게 많지 않고 취재 후기성으로 쓰는 책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프리랜서 제도가 덜 발달해있다는 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 바람직한 사회는 논픽션이 많이 나오는 사회라는 소설가 장정일씨의 지적에 동의한다는 말을 책에 썼던데 부연설명을 해주신다면?
= 장정일 선생님이 쓴 글을 우연히 읽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세월호 사건이 있었는데 정상적인 사회라면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논픽션이 수십 종이 나와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칼럼이었어요. 그 때 논픽션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창 하던 때여서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책의 머리말에서 현재 한국 언론이 처한 현실을 진단하면서 언론이 권력과 진영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인데 그런 조건에서 스스로의 언로를 따로 마련하는 방법으로 ‘논픽션 책쓰기’를 거론하고 있는데요. 이런 문제의식은 실제로 일하면서 느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그렇죠. 그런데 그 부분을 공감해주시는 것 자체가 저는 참 고맙기도 합니다. 기자 사회에서도 사실 그런 문제의식이 많지 않다고 봅니다. 뭔가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 영역들이 별로 없어요. 종합편성채널의 등장과 같은 미디어 환경 변화도 그런 현상을 더 강화하고 있구요. 원인을 딱 꼬집어서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그런 현상이 확실히 심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 준비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본인이 시험을 준비할 때를 돌이켜보면서 조언을 해줄 내용이 있나요?
= 자기계발서라는 게 뻔한 말을 멋있게 포장하는 것인데 저도 뻔한 말을 포장해서 해보겠습니다.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루틴’(routine)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경험을 되돌아봐도 그렇고.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을 잘 때까지의 자기 일상이 매우 반복적이고 치밀하게 구조화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일어나서 어떤 신문을 몇 시까지 정리하고, 그것이 끝나면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고, 도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는 뭘 하고 하는 식으로 짜는 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날 그날의 자신의 동선을 A부터 Z까지 반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촘촘하게 반복하다면 보면 누적된 힘이 폭발하는 시기가 오는 거니까요. 공부할 때 확 공부하고 놀 때는 확 놀고 하는 식으로는 안 되고 매일매일 반복적인 일상에 자신을 노출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또 하나는 말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언론사 입사 준비는 사법시험 준비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골방에 틀어박혀서 책만 읽는다고 되는 건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는 기회를 자꾸 만들고 그런 공간에 자신을 노출해야 합니다. 그래야 논술이나 토론 실력을 올릴 수 있고, 정보도 얻을 수 있고, 면접시험에도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많이 하고, 말을 많이 듣고, 언어에 자신을 많이 노출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 이치로 3천안타 터지듯이 뭔가 터지는 게 아닐까요(웃음). 이치로도 루틴의 강자잖아요.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보니까 그도 매우 루틴하게 하루를 조직해서 생활하는 사람이더라구요.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 하고 글을 쓰고, 달리고, 그 다음에 낮잠 자고 하는 식으로. 그걸 보고 성공의 비결은 루틴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어요. 저의 준비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한겨레>와 <중앙일보>를 보고 자기 전에는 하루의 마무리로 ‘시사투나잇’이라는 시사프로그램을 보는 식으로 루틴하게 지냈던 것 같아요.
 
- 준비생 때 글쓰기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내 기억으로는 좋아하는 글쟁이들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체계적으로 모아놓기도 했던 것 같은데.
= 예, 맞습니다. 좋아하는 글쟁이들의 글을 모아놓기도 했고, 제가 그 블로그에 글도 꽤 많이 썼습니다. 써봐야 글이 느는 것이니까요.
 
- 사생활에 관한 질문일 수도 있어서 조금 그렇기는 한데, 기자 부부잖아요? 특히 같은 언론사 부부인데, 사실 기자 부부에 대해 준비생들이 막연하게 고정관념으로 보기도 하고, 궁금증을 갖기도 하는데 현실은 어떤가요? 좋은 일이 많은가요. 아니면 반대의 경우가 많은가요?
= 당연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일장일단이 있죠. 늦게까지 일하거나 술 마셔야 한다든지 하는 일상을 세세히 잘 아니까 한 마디만 해도 알아듣는다는 점이 장점이죠. 단점은 집에서도 대화의 화제가 누구 뒷담화를 하든 칭찬을 하든지간에 회사 얘기가 주요 소재가 되니까 회사의 연장 같은 느낌이 있어요(웃음).
 
글 김창석
사진 김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