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시험을 AS해 드립니다] 2. 이런 작문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2)_ 이재훈 기자

  • 20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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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사기고
2) 보편적인 사례를 제시해야 합니다.

저널리즘 글쓰기는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저널리즘 글쓰기는 그러니까, 설득력있는 글쓰기입니다. 어떤 주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있는 사례를 제시해 보편적인 공감을 얻고, 그 공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분석과 주장을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는 게 좋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제시하는 사례가 주제와 어떻게 연관되느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례를 제시할 때는 신변잡기적인 자기 경험담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사례를 제시하면서 글을 풀어나가는 게 좋습니다. 물론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자기 경험담도 쓰는 이의 눈으로 본 사실을 정교하게 기술하는 방식으로 전개한 뒤 이를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주제와 잘 연결하면 좋은 사례가 됩니다. 하지만 자기 경험에서 그런 메시지를 추출하기 어렵다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나 문화적 콘텐츠를 사례로 소개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면 공감을 끌어내기 쉬운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로는 △역사적 사실 △백과사전적 지식 △신문 보도를 통해 드러난 각종 사회 현상 △영화나 미술 등 예술작품 이야기 △각종 과학적 통계 자료 등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사례를 들어 글을 쓴 한 지원자의 글을 보겠습니다.
 
 
“현재 모든 화가들이 비너스의 거짓을 얘기할 때, 마네는 물었다. 왜 거짓을 말해야 하는지,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지?”

1863년 미술사의 물줄기를 바꾼 불후의 명작 <올랭피아>에 대한 에밀 졸라의 반응이다. 이 작품은 표현과 내용의 측면에서 기존 회화와 차이를 분명히 했다. 입체감과 원근감을 제거해 회화면의 울성에 집중하는 추상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으며, 신화나 종교가 아닌 당대의 인물을 등장시켜 ‘동시대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특히, 후자에 주목하면, 사실 올랭피아의 구성은 특별할 것이 없었는데, 모티프의 대부분을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조’에 그치지 않고, 동시대 여인을 등장시킨 결정적 ‘차이’가 올랭피아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사소한 한부분의 변주를 통해 전혀 다른 결과를 이끌어낸 마네. 그러나 동시대 화가들과 다른 작품세계를 고집했던 마네의 예술활동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누구보다 살롱에 입선하길 원했지만 낙선은 계속됐다. 그럼에도 미술에서의 신념과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2015년 한국사회에는 뚝심의 ‘마네정신’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인생의 정도를 정해두고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또한 취업을 위한 ‘5종 명세’의 단어에서 엿보이는 것처럼 목표를 향해 단 하나의 길만이 제시되는 지금, 마네가 그랬듯 사소한 발상의 전환이 정상에 오르는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한 번 뒤처지면 낙오하는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개인에게만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올곧게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대나무의 모습을 강요할 순 없다. 무엇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인정할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관심을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말하는 인도 고대 경전의 가르침이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려 애쓰는 무소들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오만한 태도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원자는 화가 마네의 삶과 <올랭피아>라는 그림을 사례로 제시하면서 글을 풀어나갔습니다. 띄어쓰기도 잘되어 있지 않아(여기선 수정해서 올립니다) 읽기 불편합니다. 표현이 너무 거창하고, 부정확한 수사도 군데군데 보입니다. 하지만 많은 지원자들과 달리 보편적인 사례를 제시했습니다. 신변잡기적 경험보다 좀 더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시한 사례와 하고자 한 이야기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 지원자가 글에서 하고자 한 이야기는 ‘사소한 발상의 전환으로 정상에 오르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자’는 문장이라고 축약할 수 있습니다. 주제가 그다지 선명하지 않아서 글이 산만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례와 이 주제의 연관성을 정밀하게 서술해내지 못했습니다. 점수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이 글의 또 다른 문제점은 문단이 정교하게 나뉘어 있지 않은 점입니다. 인용 문구 한 문장으로 된 첫 문단을 하나의 문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본다면, 전체 글이 두 개의 문단으로 구성돼 있는 셈입니다. 짧은 글일수록 문단은 글의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가집니다. 문단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지 않으니 글이 말하려는 바가 너무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전달됩니다. 문단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게다가 문장의 밀도가 떨어집니다. 저널리즘 문장은 압축적이고 효율적인 문장을 써주는 게 좋습니다. 군더더기는 최소화하고, 하고자 하는 말만 간결하게 쓰는 게 좋습니다. 이 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지원자들 문장이 그랬습니다. 초점없이 장황하게 중언부언하는 문장이 많았습니다. 간결한 문장으로도 충분히 유려한 문장을 쓸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떤가요.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에는 이러한 일화가 나온다. 이 책의 저자인 G.더글라스는 한 일본인 학자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센트럴파크를 지나가는데 일본인 학자가 굉장히 놀라워했다. 저자는 이렇게 빌딩이 가득한 도시에 엄청난 규모의 공원이 있으니 놀랄 만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인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와~미국은 좋겠군요. 여전히 개발할 수 있는 땅이 도시 한복판에 있으니 말입니다.”

센트럴파크는 미국인들의 쉼터였다. 지친 삶을 달래고 여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학자 눈엔 그냥 갈아엎고 더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있는 공터에 불과했다.

비단 그 학자만의 이야기일까. 얼마 전 IOC에선 평창동계올림픽의 분산개최를 권고했다. 과도한 비용이 든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비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가리왕산이다. 활주로가 지어질 예정인 그곳엔 500년된 나무가 가득하다. 가리왕산은 우리나라가 보호해야 할 최대습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500년이 무색하게 이곳 가리왕산은 단 보름의 축제를 위해 갈아엎어질 운명에 처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평창올림픽이 그 지역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도움이 된다면 충분히 열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현실은 다르다. 메가 이벤트의 최대 수혜자가 지역주민이 아니라 기업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기업의 돈놀이 앞에 오백년의 역사는 톱질 한 번으로 사라졌다.

물화, 모든 것을 숫자로 환원시키는 것에 익숙한 나라다. 경제성장을 이유로 돈이 되는 것만 살아남고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은 사라졌다. 그들 눈엔 오백년된 나무 한 그루가 가치있을 리 없다. 명품가구를 만들 수 있지 않는 한 말이다. 물론 숫자만큼 빠르고 쉬운 것 또한 없다. 사람들에게 느티나무 가질래 소나무 가질래라고 물으면 우물쭈물하지만 백만원짜리 느티나무 가질래 천만원짜리 소나무를 가질래라고 물으면 대답은 쉽고 명료해진다. 그러나 쉽고 빠를수록 놓치는 것이 많은 법이다. 같은 숲에서 같은 인고를 겪어냈을 두 나무의 삶은 인간들이 정해놓은 숫자놀이에 과감히 생략되고 만다.

영화 <춤추는 숲>에서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성미산에 들어설 한 사립초등학교를 상대로 투쟁을 시작한다. 영화는 그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새벽에 주민들 몰래 밀고 들어오는 중장비 앞에서 마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두 팔 벌려 나무 한 그루씩 안고 있는 것밖에 없었다. 우리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무언가를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 그냥 뺏기지 않기 위해 꼭 끌어안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

경관을 이유로 플라타너스 나무가 뭉툭뭉툭 잘려나가던 날이었다. 누군가에겐 지저분해 보였을지 모르나 내겐 소중한 존재였다. 여름이면 그늘이 돼주었고 가을이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내 발밑을 맴돌았다. 너무 속상한 나머지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친구와 함께 소주를 기울였다. 저 나무가 너무 불쌍하지 않냐며 볼멘소리를 덜어냈다. 그러자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아저씨들이 수군거린다. 요즘 젊은 것들이 헛소리나 하면서 시간을 축낸다고 말이다. 이제 우리에겐 나무 한 그루를 잃고 슬퍼할 권리조차 사라졌다.
 

 
사례가 풍부한 글입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발췌한 사례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과 가리왕산 사례 △영화 <춤추는 숲>에서 묘사된 성미산마을 사람들의 사례에 더해 최근의 개인적 경험까지 보탰습니다. 짧은 글에 이 정도로 많은 사례를 넣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편적인 사례와 개인적 경험을 적절하게 섞은 점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이 글 역시 높은 점수를 받진 못했습니다. 우선 나열된 사례를 한 쾌에 꿸 수 있는 분석과 주장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나열된 사례 가운데 분석을 가미한 부분이 ‘물화’로 시작하는 문단입니다. 하고자 하는 말이 ‘물화’ 한 단어로 귀결됩니다. 다소 진부한 일반론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게다가 이 문단에 따라오는 글은 전체 사례와 연관되어 있는 분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장황하고 중언부언하는 설명이 이어져 있습니다. 삭제하고 읽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작문 글은 대략 1000자에서 1400자 사이 분량을 제시합니다. 200자 원고지 5매에서 7매 사이입니다. 이 정도 분량에서 설득력 있는 글쓰기를 하려면, 좀 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주제를 잡는 게 좋습니다. 그런 주제가 좀 더 선명한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지요. 그러지 못한 상태에서 사례를 기계적으로 나열하다 보니, 겉핥기만 하고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글은 인상을 남기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