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시험을 AS해 드립니다] 2. 이런 작문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1)_ 이재훈 기자

  • 2018.05.28
  • |
  • null
  • |
  • 강사기고
2. 이런 작문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1) 저널리즘 글쓰기는 일기와 다릅니다.

작문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글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간략한 소감을 메모했습니다. 제가 가장 많이 쓴 메모는 이 문장입니다.
‘저널리즘 글쓰기는 일기가 아니다’
올해 작문의 제시어는 ‘나무’였습니다. 일단 한 지원자가 쓴 글을 보겠습니다.
 
 
재미없겠지만 군대 이야기다. 나는 강원도 동해안 최전선에서 군생활을 했다. 전역을 몇달 앞둔 어느 여름날, 우리 부대에 새로운 임무가 떨어졌다. 6월부터 8월까지 매일 밤마다 ‘송도’라는 섬에서 야간매복작전을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여름만 되면 북한 인민군이 인근 해역에서 해상 훈련을 비밀스레 진행한다는 한 탈북자의 증언이 있은 후였다. 송도는 우리가 발을 디딜 수 있는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섬이었던 만큼, 적의 동향을 감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첫 매복작전에 투입되던 날, 나는 극도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송도는 본래 작전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실제로 송도로 이어지는 해안가에는 유실된 지뢰가 군데군데 있었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날렸을 법한 속칭 ‘삐라’도 상당수 흩어져 있었다. 불안한 마음을 붙잡고 드디어 송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름은 섬이지만 송도는 뭍과 거의 붙어있기 때문에 사실상 육지로 봐도 무방했다. 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날 반기는 건 소나무들이 아니라 빽빽하게 솟아있는 대나무들이었기 때문이다.

송도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당연히 섬에 소나무가 많겠거니 싶었다. 인천과 부산에 있는 송도들도 소나무 송(松)자를 쓰지 않았던가. 그러나 동해 바다 가장 북쪽에 위치한 송도는 사실 죽(竹)도였다. 그날 밤, 나는 대나무 속에 둘러싸인 채, 왜 이 섬이 죽도가 아니라 송도일까 생각해봤다. 깊은 고민을 해봤지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송도의 비밀은 다음날 알 수 있었다. 사실 섬의 반대편 쪽에는 소나무가 꽤 존재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송도라 불려왔다. 이 섬에 대나무가 많이 심어진 건 한국전쟁 때의 일이다. 동부전선은 산세가 험해 남한군과 북한군이 모두 진격을 하지 못하고 충돌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해안로가 그 대안이 됐다. 남북 모두 일종의 게릴라 부대를 운용하면서 송도 인근 해안을 장악하려 했다. 먼저 들어온 곳은 북한군이었다. 북한군은 남한군을 견제하기 위한 매복지로 송도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당하지 않도록 무수히 많은 대나무를 심었다. 작전은 유효했다. 남한군은 송도와 인근 지역에 매복해 있던 북한군에게 연속적으로 타격을 입었고 더 이상 북으로 진출할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날 때쯤에야 송도는 남한의 손에 들어왔고 군사분계선은 송도 바로 위 지역에서부터 시작하게 됐다.

그날 이후, 매일같이 계속된 매복 작전 중에서도 전쟁이 주는 공포와 분단에서 비롯된 비극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군생활을 한 시기는 남북관계가 경색되던 때와 꼭 겹쳐 있다. 전역한 지 5년이 지난 지금에도 분단의 비극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예비역들은 자신이 군생활을 했던 지역을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송도의 대나무밭을 밟아보고 싶다. 대나무들을 끌어안고 오랜 시간 동안 슬픔만을 목격해와서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위로의 말을 던져주고 싶다.
 
 
자신의 군 생활 경험담을 길게 서술했습니다. 이 글은 남한 동북쪽 최북단에 ‘송도’라는 섬이 있다는 사실 외에는 별다른 정보값이 없습니다. 정보값이란, 읽는 이와 함께 공유하고 살펴볼 만한 유의미한 사실 관계를 일컫습니다. 정보값이 크지 않은 이런 글은 ‘군 생활 감상문’ 정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많은 지원자가 이런 신변잡기적인 경험을 풀어쓰는 글쓰기를 했습니다. 그런 글은 의미 있는 저널리즘 글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여러분이 편집기자라면, 이런 신변잡기적 개인의 경험을 신문에 싣고 싶을까요. 저널리즘 글쓰기는 신문에 실을 칼럼을 쓴다고 생각하고 써야합니다. 그것이 비록 입사 시험이라고 해도 말이지요.
하나 더 보겠습니다.
 
 
소나무 같은 삶은 불가능하다.
어린 시절 가졌던 소망 중 하나는 소나무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사계절 변함없는 소나무는 성장하는 청소년기 내가 닮고 싶은 모델이었다.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건강한 마음을 지켜내고 싶었다.

이런 생각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 때다. 철없던 초등학생 시절 닥쳐온 IMF 구제금융 사태는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주변 친구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셨고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가야만 했다. 친한 친구네 가족은 서울을 떠나 인천으로 갔다. 중학생 때는 집안 형편이 조금 나아져 할머니, 동생과 함께 일본에 사는 작은 아버지 댁에 다녀왔다. 몇 번의 전학을 다니면서 수줍음이 오히려 많아졌던 나는 말이 안 통하는 일본에서 동생을 이끌고 동경 시내를 구경하고 다녔다. 복잡한 동경 전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긴자 거리에서부터 디즈니랜드까지 몇일 동안 동경 이곳저곳을 누볐다.

IMF 사태로 가족에게 닥친 불안이나 일본을 돌아다녔던 경험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을 필요로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의 생활 역시 매번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이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환경과 사람은 필연적으로 나를 변화시켰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초등학생의 나는 더 이상 내 모습이 아니었다.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초등학생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을 테다. 그것은 곧 정체를 의미한다. 변화 없는 삶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항상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에게 매 순간은 새로운 경험이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이해 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각자의 의견을 표출하는 정치적 과정 속에서 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간다. 사회가 진보한다는 믿음은 그래서 유효하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환경에 처하면서 인간이 성장해가듯, 성장하는 개인들이 만들어가는 사회 역시 스스로 성장한다.
소나무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아쉽기보다는 오히려 기뻤다. 어제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될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순간의 경험이 때로는 나와 사회 구성원들을 고통스럽고 힘들게 만들지만 그 경험이 결국 나를, 그리고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 거라고 믿는다.
 
 
이 글은 시선이 주로 ‘나’에 머물러 있습니다. 삶의 변곡점을 하나씩 거론하면서 ‘언제나 한결같은 소나무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함을 깨닫게 된 나’를 주제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은 형식적인 면만 봤을 때 자기소개서에 어울릴 법합니다. 저널리즘 글쓰기는 자기를 소개하는 글이 아니지요. 개인의 경험을 쓸 수는 있지만, 경험을 서술하는 데만 그쳐선 안 됩니다. 그 경험을 통해 말하고 싶은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어야겠지요. 이 이야기는 이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 더 하겠습니다.

게다가 이 글은 개인의 경험을 백화점식으로 하나씩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변화하면서 성장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풀고 있습니다. 별다른 감흥을 남길 수 없는 까닭이겠지요.

아울러 5번째 문단에 나오는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이해 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각자의 의견을 표출하는 정치적 과정 속에서 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간다. 사회가 진보한다는 믿음은 그래서 유효하다’는 문장은 전체적인 글의 맥락과 어떤 개연성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경험을 통해 변화해가는 나’에 대한 서술과 ‘사회가 진보한다는 믿음’이라는 명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5문단이 글의 흐름에서 겉도는 까닭입니다.
또 다른 글을 하나 보겠습니다.
 
 
소쿠리 하나에 대추가 한가득이다. 초록빛 여물지 않은 상큼한 어린 대추부터 쪼글쪼글 말려진 늙은 대추까지, 모두 집 마당에 심긴 대추나무로부터 온 것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집을 지켜온 대추나무는 철마다 한아름 열매를 맺었다. 엄마는 대추 소쿠리를 품안에 끼고 옆집 앞집을 드나들며 한봉지씩 대추를 나눠주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이층집에 딸린 마당엔 대추나무 외에 감나무, 포도넝쿨이 있었고 철마다 과실이 맺히면 엄마의 손도 바빠지고 이웃 아주머니들과의 담소소리도 높아졌다. 내가 아홉살이 되던 해, 그러니까 우리집이 마당이 딸린 이층집에 살 때까지의 기억이다.

열 살이 될 무렵,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새집은 같은 동네의 반지하방. 세계는 넓다고 큰소리치던 한 회장이 이끌던 D모기업에 다니던 아버지는 98년 직장을 잃었다. 배운 풍월로 제조업을 해보겠다며 회사를 차렸지만 2년도 채 못 가 부도를 맞았다. 어린 나는 집의 외형적 변화로부터 기울어진 가세를 감지했다. 새집엔 마당이 없었다. 마당이 왠말이냐, 반지하라 그런지 햇빛도 반밖에 들어오지 않아 낮에도 불을 켜고 살아야 했다. 이는 곧 나무와의 작별을 의미했다. 더이상 나무를, 식물을 키울 수 없는 삶으로의 추락. 창 너머로 나무 밑동이나 볼 수 있음 다행이었다.

나무를 키운다는 것은 일부에게 허락된 나름의 특권이었다. 나무를 키운다는 것은 나무가 심길 땅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서울에서 이 땅을 가지려면 그만한 경제적 여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집의 빈부는 나무를 기점으로 갈라졌다. 그때부터였다. 엄마가 작은 화분을 사모으기 시작한 것은. 마트에 다니기 시작한 엄마는 출퇴근 길에 조그만 식물들을 사왔다. 때로는 프리지아였고 때로는 장미 한송이였다. 양파를 물에 담가 싹을 틔우거나 고구마에 새순이 돋길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작은 화분들이 부엌 싱크대 위 네모난 창틀 위에 가득이다. 식물은 오래가지 못한다. 제가끔 고개를 푹 숙이며 고꾸라진다. 그럼에도 엄마는 화분 구매를 포기하지 못한다. 푸르른 나무의 기억이, 지나간 시절의 풍요가 엄마로 하여금 작은 화분이나마 키워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만드는 모양이다.

며칠 전 광화문을 지나다 교보문고 빌딩에 걸린 글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는 나무끼리 숲을 이루는데, 너와 나라는 나무는 왜 숲이 되지 못하고 홀로 서 있는가 묻고 있었다. 그 질문에 숨겨진 힐난이 나는 조금 미웠다. 나무조차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여건이다. 모두들 가지가 꺾이거나 밑동이 잘려버린, 제각각 불완전한 나무의 모습을 하고 서 있다. 스스로 살아내기도 벅찬 나무들에게 숲이 되기를 바라는 그 ‘착한 말’이 못내 미웠다. 요즘은 선인장을 엄마에게 선물한다. 사막에서도 살아내는 녀석이라니. 조금 더 오래 창틀에 남아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다. 엄마의 창틀이 오래 푸르렀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글은 ‘나무’를 소재로 삼아 IMF 전후로 확연하게 달라진 개인의 가정사를 차분하게 서술했습니다. 두 번째 글과 비슷하게 개인의 가정사를 다루고 있지만, 앞의 두 글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나무와 함께 살만큼 여유롭다가 어느 순간 처지가 어려워져 화분과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 바뀐 엄마’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눈길로 묘사에 치중하는 글쓰기를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신변잡기적이지만, 앞의 두 글에 담긴 ‘나의 경험담’이나 ‘나의 다짐’보다는 개인의 경험담 속에서 조금이나마 사회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 역시 아쉬움이 남습니다. 좀 더 명확하게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IMF 이후 ‘추락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꽤나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글쓴이는 네 번째 문단에 있는 “나무조차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여건이다. 모두들 가지가 꺾이거나 밑동이 잘려버린, 제각각 불완전한 나무의 모습을 하고 서 있다.”는 문장을 통해 개인의 가정사를 한국 사회의 현재와 견주는 설명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특정한 세대나 계층이 왜 ‘나무조차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여건’에 처해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비유에 그치고 말았지요. 앞의 세 문단에서 길게 이어진 묘사를 좀 더 압축적으로 줄이고, 네 번째 문단에 좀 더 구체적인 팩트를 제시하면서 설명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랬다면 ‘질문에 숨겨진 힐난’에 대해 ‘미워하는 감정’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설명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읽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쉬웠을 겁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를 하면서 이 장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작문에서 지원자 다수가 신변잡기적인 개인적 술회에 멈춘 글을 썼습니다. 그런 글을 쓴 많은 지원자들이 ‘나무’라는 주제어를 두고 부모 혹은 조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조부모)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는 가지’라는 프레임. 많은 지원자들이 선택한 주제입니다. 지원자들의 나이대를 생각하면, 지원자들의 부모 세대는 이제 막 인생의 은퇴기를 앞두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IMF 이후 각자도생해야 상황 속에서 개인을 지지해준 건 그나마 가족뿐이었겠지요. 그 중에선 붕괴된 가족을 경험한 지원자도 있을 겁니다. 지금 세대 지원자들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이 혹시 ‘가족의 생존’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개인 가정사나 경험담이 글의 대부분을 차지한 이유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개인의 경험은 소중한 글쓰기 자원입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사유가 담겨 있지 않고, 책이나 신문에 담겨 있는 지식만 짜깁기해서 쓴 글은 좋은 글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험을 나열하는 것에만 머무른 글 역시 좋은 글이 되기 어렵습니다. 개인의 경험과 그에 따른 사유, 사회적 시선과 메시지가 잘 조화된 글이 좋은 글입니다. 개인적 경험이 어떻게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는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합니다.
개인의 경험과 그에 따른 사유를 객관화·사회화하지 않으면 좋은 저널리즘 글쓰기를 할 수 없습니다. 저널리즘 글쓰기는 사회적 글쓰기입니다. 글에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의미란 어떤 글에서 다루는 사안이 “많은 사람들이 절실하게 생각하거나 경험하는 문제여서 어떤 형태든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메시지라고도 합니다. 글에 사회적 의미를 담기 위해선 평소 면밀하게 관찰한 사회 현상을 글 주제와 관련한 사례로 제시하면서 현상에 대한 분석과 견해로 뒷받침해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