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데이터저널리즘인가] 권오성 기자

  • 202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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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사기고

2017년 11월 8일 미국 시라큐스대학교에서 에이피(AP)의 데이터 에디터 메간 호이어(Meghan Hoeyer),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데이터 기자 폴 오버버그(Paul Overberg), 통계분석 전문매체 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의 데이터베이스 기자 드루밀 메타(Dhrumil Mehta) 등 3명이 패널로 참여하는 디지털 저널리즘 세미나가 열렸다. 이 분야 베테랑 기자들로부터 다시 주목받고 있는 데이터 저널리즘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자리에 참석한 필자는 이들에게 '현재 우리가 제2의 데이터 저널리즘 혁명이라고 할 만한 큰 변화를 목격하고 있 는 것인지' 의견을 물었다. 각자의 생각은 조금씩 달랐다. “제2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계속되는(ongoing) 혁명을 보고 있다. 최근의 변화는 놀랍다.”(오버버그) “새로운 기술과 변화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혁명이란 말은 마치 전혀 새로운 경향이 일어나는 것처럼 들리는 효과가 있는데 그것은 맞지 않다. 혁명(revolution)이라기 보단 진화(evolution)라고 하고 싶다.”(호이어)

다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지금이 데이터 저널리즘이 새롭게 박동하는 시기라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세미나의 주최자이자 토론의 사회를 맡은 이 대학의 조디 업튼(Jodi Upton) 저널리즘스쿨교수(언론학)는 “제2의 혁명이라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현대는 (대중으로부터) 정보를 감추는 것이 전에 없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기에 언론인은 데이터를 통해 가려진 맥락을 밝혀 내는 의무를 진다. 데이터 분석 도구의 발전, 뉴스룸 간의 경쟁, 기자 상호간(peer-to-peer) 학습, 전문 교육기관의 등장 등으로 그런 요구에 부응할 여건이 갖춰지고 있다. 혁명적 시기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 저널리즘을 본격적으로 논하기 앞서 ‘저널리즘에 있어 데이터가 지니는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언론연구소(American Press Institute)은 2016년 3월 낸 보고서에서 데이터가 편집국과 언론인에게 주는 의미와 영향을 정리하였다. 이 가운데 주요 내용을 뽑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데이터는 주장을 검증하는 데 있어서 전통의 취재원보다 강한 힘을 지녔다. 뉴욕타임스의 데이터 팀장인 사라 코헨은 “다른 정보원(소스)에 비해 데이터가 가진 분명한 장점은 그것이 사실(팩트)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일단 데이터가 확보되면, 개연성은 높지만 증명은 어려운 아이디어를 기사화하기 위해 일회적인 사례를 모으는 데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전문가의 입에 의존하는 방식도 최소화할 수 있다. 데이터가 모두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의 위험성도 뒤에서 논의하겠지만, 일단 데이터가 뒷받침 되는 보도는 그렇지 않은 보도에 비해 검증 능력에서 우월하다는 점은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데이터는 편집국의 크기에 상관없이 다양한 범위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일단 정확한 정보만 갖춘다면 중소 규모의 언론사도 얼마든지 글로벌 규모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특히 지금 시대에는 큰 비용이나 인력 투자 없이도 이런 방식이 가능하다. 즉, 기본적인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모으고 공개 소프 트웨어만 잘 활용해 분석해도 충분히 좋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심지어 1인 미디어도 훌륭한 데이터 분석 기사를 낼 수 있다.

셋째, 데이터는 새 이야기를 쉽게 찾도록 돕는다. 데이터 분석은 무의미해 보이는 숫자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힘이 있다. 이렇게 찾아낸 패턴은 이후 취재를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뉴욕시립대(CUNY) 소셜 저널리즘 프로그램(Social Journalism Program)의 기술자, 주에 양(Jue Yang)은 미국언론연구소(API)와의 인터뷰에서 “컴퓨터는 무언가를 빠르게 찾거나, 또는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것을 찾는 데 뛰어나다”고 말했다. 숫자로 표현된 데이터 속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분석하면, 그저 사람이 보아선 오랜 시간이 걸릴 패턴을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이런 분석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지만, 데이터는 충실한 안내자가 될 수 있다.

넷째, 데이터는 투명성과 더욱 엄밀한 객관성을 제공한다. 투명성은 주로 정부 기관을 상대로 많이 제기되는 요구지만 지금 시대에는 어느 기관에게나 요구되는 가치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하버드대학교 인터넷과 사회를 위한 버크먼 센터 (Harvard’s Berkman Center for Internet & Society)의 데이비드 와인버거 선임연구원은 이를 두고 “투명성이 새로운 객관성”이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언론의 보도는 불편부당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여느 언론학교과서에서도 나오지만, 주장을 객관으로 교묘하게 가장하기 쉬워진 시대에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자가 자신의 결론이 기반하고 있는 날 것의 데이터를 온라인으로 함께 공개한다면 객관성에 대한 시비는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 궁금한 누구나 같은 데이터를 이용해 주장을 쉽게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기사의 신뢰성을 보증하는 새로운 담보가 될 수 있다.

끝으로 데이터는 저널리즘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기자 일상의 상당 부분은 반복적인 일이다. 정부나 기관 등으로부터 주기적으로 정보를 제공받고 이를 기사로 가공해 독자에게 전하는 일은 업무의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이런 정보의 상당량이 전자적인 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요즘, 이를 데이터로 전환해 자동화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적절한 데이터 선별 기술만 활용한다면 기자가 보다 방대한 정보를 보다 짧은 시간에 다루는 일도 가능해졌다. 데이터는 이를 능숙하게 다루는 언론인에게 높은 효율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요약하자면, 데이터는 저널리즘을 보다 팩트(사실)에 충실하고, 작지만 강하며, 새 로운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발견해서,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도록 도울 수 있다.

데이터 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배경으로 사회 전반적인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나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드론 등 각종 새 기술이 부상하고, 일상과 결합하면서 정보기술(IT)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가까운 거리에서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 바둑 챔피언 이세돌 9단을 꺾는 모습을 지켜본 우리나라는 특히 그 충격이 컸다. 그 반향으로서 국내에선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과열 양상마저 보일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런 기술은 사이버 공간의 정보(데이터) 와 현실 세계 실물의 융합을 공통적인 특징으로 삼고 있다. 사회, 경제,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융합은 기존과 다른 작업 수행 방식과 변혁적인 시도가 가능하게 했다. 새로운 정보를 다루는 게 본질적 역할인 저널리즘은 이런 변화의 영향을 먼저 받고 있는 몇몇 영역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저널리즘, 센서 저널 리즘, 소셜 데이터 저널리즘 등 각종 새로운 시도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가운데 데이터 분석이 이들의 공통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데이터 저널리즘의 가치를 재 발견 하게 하는 바탕으로서 작용한다.

가짜 뉴스(fake news)의 득세도 데이터 저널리즘이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즈음해서 페이스북을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빠르게 확산된 가짜 뉴스는 의견이 주장을 압도하는 탈진실(post-truth) 시대의 상징적인 증상이 되었다. 누구나 손쉽게 인터넷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기술이 발전하고 공 유되면서 뉴스와 가짜 뉴스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아졌다. 이런 거짓 정보의 양산에 맞서 데이터를 검증하고, 검증된 데이터를 통해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데이터 저널리즘의 더 큰 역할이 요구되는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권오성, World Media Trend 2017-Data Journalism, 한국언론진흥재단